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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_20130718]_ 입양이 삶을 바꿨다
등록일 : 2016-08-10 작성자 : 신언항 원장 조회수 :  1,723

 [2013-07-18]

 

[힐링인터뷰] 입양이 삶을 바꿨다

입력시간 | 2013.07.18 09:57 | 장종원 기자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11&newsid=01649846602875832&DCD=A00701&OutLnkChk=Y

 

신언항 초대 중앙입양원장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30여년간의 오랜 공직 생활의 끝자락이었다.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시점이었다. 입양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은퇴한 뒤인 만큼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양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다. 신언항(66) 초대 중앙입양원장의 이야기다.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의 차이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키스를 글로 배웠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입양 문화도 마찬가지다. 입양을 ‘귀동냥으로 배운’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게 쉽지 않아”, “나중에는 다 자기 부모 찾는다더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입양을 현실로 ‘경험’한 사람들은 다르다. “이렇게 귀엽고 맑은 아이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냐”는 마음이 앞선다.

신 원장은 2005년 네살배기 동영이를 만났을때 걱정보다는 기쁨이 앞섰다. 입양을 결심한 신 원장은 매우 일요일마다 보육원을 방문해 직접 아이들을 만났고 또 경험했다.

그 중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밟혔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아이였습니다. 우유를 잘 먹지 않아 보육교사가 애를 먹는 모습을 보고 더 관심이 가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운명으로 이어졌다. 어린이날, 명절 때에 아이를 며칠씩 집에 데려와 놀다 가게 했다.

아이도 어느날부터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육원에 돌아갈 때가 되면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끝내 체념하듯 발길을 돌리는 4살 아이를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신 원장은 “마치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 복귀하는 모습 같았다”고 회상했다. 신 원장과 부인 김명희(62)씨는 아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입양’ 새로운 삶의 시작

그렇게 아이를 입양한 후 신 원장은 삶은 바뀌었다. 자연스레 국내 입양 부모들 단체인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로 활동하게 됐다. 이어 우리나라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서명을 위해 중앙입양원을 설립하면서 신 원장이 초대 원장을 맡았다. 신 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중앙입양원의 설립은 과거 홀트아동복지회로 대표되는 민간기관이 아닌, 국가가 입양을 주도하고 아이를 돌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4만명에 이르는 입양인의 뿌리 찾기, 입양 사후 관리, 입양 전문기관 관리 감독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신 원장은 중앙입양원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를 찾고, 입양원을 알리기 위한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2년의 임기 동안 중앙입양원의 역할과 업무를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공동체 의식의 부재가 ‘입양 후진국’ 오명

우리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입양 후진국’,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매년 1000명 가까운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된다. 지난해 미국의 전체 외국 입양아 중 한국 입양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7.2%로 중국, 에티오피아, 러시아 다음으로 많다.

1995년에 발효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도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오다 올해야 서명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발생하면 어려운 상황이라도 원래 가정에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차선책으로 국내 다른 가정의 보호, 최후 수단으로 국제 입양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하는데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보호 아동은 3분의 2는 보호하겠다는 가정이 없어 보육원으로 가는 게 현실이다.

혈통을 주시하는 고유의 문화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다. 신 원장은 공동체 의식의 부재, 나눔문화와의 스킨십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그릇의 물은 가득 차야 흘러넘친다. 나눔 문화 역시 충분히 성숙하고 확산돼야 입양 문화도 바뀌고 기부도 늘어나며 우리 사회의 아픈 곳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아나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입양 문화가 확산되기 힘듭니다. 성공이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기여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입양이 다시 입양으로 이어진다면..”

동영이는 12살이다. 어릴때 부터 3~4곳의 학원에 다녀야 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시스템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아 시골에서 키운다. 동영이는 다른 또래들처럼 장난이 심하고 까분다. 가끔은 거짓말도 한다. 신 원장은 “안타까울때도 있지만 결국 그게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 원장이 동영이에 대해 바라는 꿈은 소박하다. 사회공동체에 잘 어우러져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사회공동체 속에서 서로 배려할 줄 알고 호감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만약 한 마흔 정도 됐을때 아이를 입양을 해서 키운다고 하면 저나 우리집 사람은 큰일을 한 것입니다.”

■중앙입양원은 2009년 보건복지부가 설립한 중앙입양정보원이 지난해 개편을 통해 설립된 기관이다. 입양아동 관련 데이터베이스 운영, 입양정책 및 서비스 관련 연구, 국제 협력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입양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이행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언항 중앙입양원 초대 원장은 지난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보건복지부에서 30여년간 근무했다. 1999년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실 보건복지비서관을 거쳐 2002년 제9대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거쳐 현재 제14대 한국실명예방재단회장과 중앙입양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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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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